독일통일 30주년을 기리며 전시를 준비할 것이다.
왜? 사실 여러 거창한 명분을 들 수 있지만,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내 삶에서 바뀐 것들은 무엇이고 또 바뀌지 않은 것들은 무얼까?
호기심의 근원을 사유해보면 아마 타자라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항상 유동하는 정체성 가운데, 장소 없는 장소성을 따라, 타자를 이해함을 통해 또한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전시를 준비할 것이다.
죽음과 같은 절대타자는 아니지만, 북한은 아마도 전 세계 모든이들에게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 비쳐지는 북한의 이미지는 항상 너무 단순하고 일방적이다. 그들의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면을 내 스스로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낯면을 보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자료들을 통해 그 북한의 모습을 가능한 그대로 내 스스로 보고자 한다.
일단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역사와 문화 자료를 정리하고 비교해 볼 수 밖에 없다. Web survey를 통해 다른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모으는 것도 한가지 구상이다. 1990년 베를린, 한국, 미국, 그래서 북한은 어떠했을지? 역사는 기억을 통해 존재하며, 또한 기억은 상상의 이면이다. 상상은 절대로 주관적인 것이다. 가장 주관적인게 객관적이고, 가장 개인적인게 정치적이고, 가장 특수한게 보편적이다.
영어패권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하이데거의 말따라 언어가 의식의 집이라면, 모국어 집을 절충하며 영어의 집을 짓기 위해 많은 비용을 치러온 이 중 나도 하나이지만 그래도 특권층에 속한다. 영어의 집도 적당히 형태를 갖춘 이제 다시금 모국어를 개축하기 위해 전시를 준비하고 싶다.
문자가 가지는 힘은 마치 씨앗과도 같다. 그 작은 씨앗에 담긴 함축된 생명력을 상상해보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씨앗에서 솟아나는 새싹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띈다. 그렇기에 이렇게 모인 문자를 바탕으로 내 주관을 통해 북한을 새롭게 기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