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내서 기호 밖 세계로 나와 사람들과 대면하고 부딛히고 깨지길 권한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만,
한 편으론 여태껏 접해온 기호를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기호에 대한 탄탄한 내공을 쌓음으로서 밖에서 부딛히며 깨질 때 깨지더라도 그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여러 무기들을 장착하고 싶다.
내가 어려서부터 책상머리 앉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도있는 기호를 접하는 인내와 내공을 길러내는 것 또한 나에게는 하나의 자기극복이다.
이러한 자기극복이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해 여물기 전에 섣불리 밖으로 나갔다가 축적해 놓은 것을 허탈하게 흘리기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가 가장 큰 불안이다.
속된 표현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목숨이라는 비용을 마땅한 교환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지식이라도 축적해 놓았다면 그것을 쌓았던 그 경험을 몸은 기억할 것이다.
내 과업을 찾아야 한다. 찾을 것 이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부딛히는게 과업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겠다.
하지만 전쟁을 치루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나가고 싶은 것 또한 현재 내 마음이다.
그가 의식하는 공부와 행동의 ‘병행 주기’는 내가 의식하는 것보다 더 긴 듯 하다.
내게는 병행 주기의 단위가 ‘일’이라면 그에게는 ‘해’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주기는 내 직관으로 오로지 나만이 알아가는 것이겠다.
그가 판단하는 나의 ‘때’도 결국 그의 경험에 빗주어서 나를 판단한 것이기에, 결국 내가 판단을 내려야한다.
나 또한 나에게 걸맞는 전쟁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
동굴 속에만 갇혀 추상적인 지식만을 다룬다면 결국 인생을 흘리는 것일 뿐.
또한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먼 미래를 내다보며 수행해야 할 창작이라면 그 또한 기호 밖 세상에서 겪은 경험들이 녹여져야 진정성이 있으리라.
결국 지금의 갈등은 ‘때’를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이 그 ‘때’인가?
지금 내가 마주할 것은 전쟁이라니 보다는 전투인가?
그 전면전의 전쟁에서 큰 힘이 되어줄 전투의 경험을 겪을 ‘때’인가?